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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일들







1) 누가 더


자기 내가 얼마나 좋아
.......음.........음......안드로메다만큼??.......자기는?
아 난 그냥 그래
헐...
아니 들어봐. 자기는 세상에 좋아하는 사람 많잖아 조카 형제 엄마 아빠 친구 후배 선배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등등. 내가 아무리 일등이고 이등이랑 차이가 십억만큼 난다해도 말야. 근데 나는 세상에 좋아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잖아. 조카 형제 엄마 아빠 친구 제자 아는 사람 알았던 사람 길거리 걷는 사람 단골 가게 사장 연예인 의사 선생 그 누구도 나는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기 말고는. 자기는 평균 그냥 그렇긴 하지만 분명히 좋고 가끔은 완전 좋을 때도 있을 정돈데, 더구나 유일한데, 누가 더 좋아하는 거야 나잖아.








2) 유도된 잠꼬대


남편과 일어나는 시간이 다섯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건 우리가 번갈아 자기 때문이다. 남편도 내심 그런거 같고 나는 대놓고 그러는데, 한 침대를 공유하는 건 정말 성가시다. 남편은 내가 일어나면 (일어날 때쯤) 잔다. 나는 깨어난 후의 네다섯시간, 혼자의 새벽이 너무 좋아서 정신없이 놀고 먹는다. 그런데 심심하다. 그래서 요즘 생긴 취미는 잠든지 두어시간 지나서 완전히 비몽사몽인 남편의 잠자리를 살펴주며 (이불을 덮어주거나 지나치게 많이 입은 옷을 벗겨주거나 베개의 위치를 잡아주거나 등등) 머리를 쓰다듬고 백허그 뽀뽀 및 이런저런 관찰과 실험을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말을 시키는 것인데, 물리적인 실험보다 요즘은 이쪽을 선호한다. 여기저기 건드리다가 무의식적인 (조절되지 않은) 남편의 리액션 때문에 얻어맞기도하고 진짜 진심으로 싫어하는 (찡그림 대박) 걸 보기도하면서 대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상하게도 자면서 대답을 잘 한다. 무슨 꿈을 꾸고 있어 물어보면, 불이 났어. 이렇게 얘기하는데, 깬 후에 불 꿈을 꿨지 응? 하고 물어보면 1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누구야 물었을 때 켄터키 할아버지라고 대답한 날 헐 뭐냐 라는 심정에 다음 날 똑같이 물어보니 김새롬 이라고 한다. 켄터키 할아버지와 김새롬 모두 내게 불리하게 해석하고 남편을 쫀다. 남편은 뭐야 기억도 나지 않아 어쩌라는거야ㅠㅠ 이러면서 괴로와하지만 아니뭐 그냥 취미야.


조금 전에 자는 걸 관찰하러 갔다가 아이구 예뻐 하며 안아주고 뽀뽀를 하고 세시간만 더 자? 마트가자 닭이랑 사이다 사러 가자? (최면을) 하니 응응 하다가 오빠가 지켜줄게, 한다. 우리는 평소 스스로를 오빠, 언니라고 지칭하는 개그를 즐겨하기 때문에 방점은 오빠가 아니라 지켜줄게에 있다. 시시껍절한 이유로 마트에 가는 나를 라이드해주는 것은 이 친구의 무의식 속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다. 충동구매를 못하게 지키는 것이고 무거운 걸 드느라 어깨가 아프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고 대중 교통 외엔 방법이 없는 나를 자기 조수석에 태워 덜 고생시키며 지키는 것이다.


라고 분석 후, 결혼의 순기능에 대해 생각 중. 그러나 이건 누구나 다 하는 결혼-남편이라는 롤이 내 인생에 생겨나며 자동 성립된 행복이 아니다. 이 남자의 특별함, 그래서 특별한 행복인 걸로.








3) 흡수 통일


얼핏 봐도 남편은 좀 변했다. 친해져서 그런거 같기도 하지만, 아니다. 나를 흉내내고 있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침없어졌고 감정 자체가 많아졌다. 나와 대립을 하는 형태도 달라졌다. 아직은 0.1프로정도의 포션이지만 남편에게서 조금씩 내가 보인다. 남편도 내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두 개의 연방이 연합하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것이며, 관성과 이기심과 생존 본능 때문에 우리는 각자 상대를 흡수하여 내가 주축이 되는 통일을 이루고 싶다.


그래야 정상이다. 그런데 남편은 조금 다르다. 자기 뜻대로 해. 당신 원하는대로 하자. 내가 남편의 의사를 물어볼 때, 이 사람은 거의 백퍼센트 그렇게 대답한다. 아니야 이건 정말 싫어, 라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따를 수 없다 싶어야 고작 이렇게 반문한다. 자기는 정말 그러고 싶어? (정말 이게 좋아? 이게 필요해? 등으로 조금씩 어휘는 변하지만)


그렇게 결정을 모두 내게 미룬다. 싸우는 거 싫어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결정 장애 있는 거 알고, 책임지고 싶지 않은 거 아는데, 대개의 것들을 잘 참는 거 아는데, 이 사람은 그래도 겪어본 바 보통의 한국 남자다. 논리를 따지는 언쟁 싫어하고 자기의 틈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좀 게으르고 적당히 가부장적인 게 옳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대부분의 주도권을 내주기가 쉽지 않을텐데. 만일, 기 쎈 마누라에게 어쩔 수 없이 양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내상이 만만치 않을텐데,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이 친구는 자기가 흡수되는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통일을 묵인한다. 허락한 것이다. 날 가져~ 이렇게 말이다. 평화를 위해서, 이것이 첫째고, 인격의 문제 현명함의 문제이기도 하겠으나, 나는 내 멋대로 이렇게 분석한다. 이 남자는 정말 나를 좋아하는구나. 내가 자기 세상이 되는 걸 오케이하는구나.


물론 내 생각이지만 (뭐 또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듯하고) 이건 무척 감동적이다. 40년간의 히스토리가 개별적인 두 개체가 연합, 특히 한쪽이 한쪽에게 스르르 흡수되겠다는 결정과 실천은 정말 정말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런 분석의 시간마다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내 행운에 감사한다. 결국 누구도 아닌 이 남자와 결혼한 것이 좋았다고 인정한다. (다른 마이너스 요소들의 상쇄 포인트이기도 하며) 그리고, 시니컬해지는 것이, 부정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돌이켜보는 것이다. 사랑이 어디있으며 그게 또한 무슨 의미가 있냐던, 그래야만 했던, 구구절절 걸레처럼 슬픈 연애들의 극복 과정을 이제는 뚝 떨어져 관망하면서 말이다.


진짜 사랑을 찾는 것은 기적이고, 그것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켜내는 힘은 노력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축복이나 지속형 마술같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깃든다. 그리고, 상관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흡수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