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어느 날 뜬금없이, 언니 윤정언니랑 연락 안하는 이유 있어? 물었다. 어어어어 아아아니? 그냥 안 해. 10년 넘게 안해서 안 해. 동생은 좀 황당해하며 그게 무슨 이유야, 엊그제 윤정언니랑 통화했어 언니가 나한테 전화했어 이러는 것이다. 우앵???
윤정이는 나랑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동기, 내내 모조리 전공이 같았고 온세상이 다 아는 단짝이었다. 오빠들은, 니네 그렇게 붙어다녀서 남자친구 안생기는 거야 쯧쯧 그랬다. 윤정이네 집에서 맨날 자구 숙제 같이 하구 윤정이 결혼할 때 당연히 내가 가방모찌했구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윤정이가 팔걷고 육개장 서빙해서 아빠 지인들이 이 집 딸이 넷이었나? 그랬었다.
오빠들좀 만나보려구 연대어학당 같이 다니구(회화 아니구 gre 들어갖구 오빠 코빼기도) 이번엔 의대 오빠들좀 만나보겠다구 서울의대 근처에서 스쿼시 배우다가 아시안 게임 나갈듯 빡쎄게 굴렀을 뿐 오빠들은 역시 코빼기도..(의대 오빠들은 스쿼시 하지 않는다)
작업실도 둘이 같이 하고 이상하게도 비슷할 때 연애 시작해서 비슷할 때 끝나고.
하여튼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완전히 서로가 서로밖에 없는 친구였다. 놀랍게도 이십년 넘게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고 항상 제일 좋아한 아이. 그런데 왜 절교한듯 우린 그랬을까. 내 결혼식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연락을 안한 이유가 없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윤정이랑 친한 첼로하는 친구가 내동생 오케스트, 라에서 비올라하는 애한테 내동생 연락처를 받아서 동생에게 전화한 것. 그렇게 몇 다리를 건너고 긴 시간이 지난 후, 난 윤정이랑 통화를 했다.
의외로, 야 뭐야뭐야 이러면서 가벼운 시작, 초고속으로 서로 근황 셰어.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윤정이 엄마가 파킨슨, 치매로 병세가 깊으시다고. 이제 딸만 겨우 알아보신다구. 5% 정도는 내 엄마나 마찬가지인데, 죄송함과 슬픔에 따끔거렸다.
근데, 엄마가 니 이름을 하루에도 몇번씩 말하셔. 모두 까먹었는데 니 이름을 기억하셔. 그 애 잘있지? 자주 만나지? 결혼은 했어? 아이구 잘했다. 이러셔. 간병인 아줌마가, 도대체 그 분이 누구셔요? 하루종일 말씀을 하셔요. 이래.
따끔거리던 난, 그냥 펑펑 울었다. 내가 갈게. 어딘지 알려줘 당장 갈게, 했는데 윤정이는 아냐, 오지 마, 했다. 그냥 내가 니 생각이 너무 나서 연락처가 바뀐거 무슨 사정 있을텐데 하면서도 무리하게 너 찾아낸거야. 우리 엄마 진작에 기저귀하셨고 상태가 너무 좋질 않아. 말도 못해. 너 그냥 오지마. 진짜 괜찮아. 마음 쓰지마.
그리고선 우린 또다시 연락하지 않는다. 2년쯤. 엄마가 하늘나라 가셨으면 부고를 전할만도 한데. 오죽하면 대충 스토리를 아는 쌍둥이 윤이은이가, 이모 도대체 왜 윤정이모랑 연락 안해요? 이모는 왜 그런 사람이세요? 이렇게 날 혼냄.
모르겠다. 왜인지. 여전히 윤정이는 내 베프고 사랑하고 그리운데, 난 그냥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의 나랑 쌍둥이인 윤정이도 아마 똑같을 것 같구.
엄마한테 좀 지나 얘길했는데 엄마도 좀 글썽글썽했다. 당연하게도 두 분 꽤 친분이 있었으니. 엄마는 역시 엄마답게 애이구 그냥반 그렇게 약주를 과하게 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재수없는 말을 했지만, 곧 통찰력읊 발휘했다.
왜 널 잊지 않으신줄 알아? 니가 이뻐서? 말도 안되지. 당신 떠나고 그 이쁘고 아까운 외동딸 외로울까봐 누구든 옆에 있어줬으면 하시는 거야. 너랑 윤정이 좀 붙어다녔어? 온 힘을 다해서 널 기억하시고, 너한테 윤정이 맡기신거야. 이거 내가 왜 아는줄 알아? 내가 그냥반 처지였어도 똑같이 했을거거든.
나 그럼 어머니한테 가볼까? 생전에 그래도 한 번 뵈면 좀 마음 편히 가실거 같잖아. 근데 윤정이가 오지말래
오지 말라는데 왜 가? 이름은 알아도 너 봐밨자 어차피 누군지 모르셔. 게다가 윤정이가 좀 깔끔해? 그런 엄마 모습 누구한테 보이고 싶지 않은거야. 내가 왜 아는지 알아? 나라도 그럴거거든.
아아 역시 우리 엄마 쌉T 냉혈인간 기존쎄.
나는 윤정이를 영영 보지 않을 것을 안다. 우린 그런 애들이다. 단 한 명의 내 친구.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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